6. 더 플랜 The Plan-'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더 플랜 The Plan-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영화 ‘더 플랜 The Plan’에 대한 나름의 감상을 정리해본다.
‘더 플랜’은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결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다. 개표 과정 설명, 이상한 점들, 숫자들과 통계, 오류의 가능성,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 플랜’ 영화가 제기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 다를 수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각자 다를 수 있다. ‘터무니 없는 음모론이다’ 에서부터 ‘개표 부정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 까지.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k=1.5라는 숫자다.
1. 기본적인 원리의 이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더 플랜’이 근거하고 있는 과학적 원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우리나라의 속담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라고 생각한다. 생물학의 유전 법칙에 관한 것이고 통계의 샘플링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론 조사의 기본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통계의 원리에 따른다면 분류표의 후보자별 득표 비율과 미분류표의 후보자별 득표 비율은 일치한다. 영화에서 얘기하는 k=1 인 경우다. 콩 심은 데 콩이 난 경우다. 그런데 18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결과는 특이하게 분류표의 후보자별 득표 비율과 미분류표의 후보자별 득표 비율이 개표구별로 전체적으로 차이가 났다. 그 비율이 1.5. '콩 심은 데 팥이 난 것'이다.
‘더 플랜’의 k=1.5의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콩 심은 데 팥이 났다' 이다.
2. 과학적 설명-논란
k=1.5가 가지는 과학적 의미를 표현해보면 다음과 같다. 완벽한 비유는 아닐 지 모르지만 그 느낌이 어느 정도인가를 이해해 보기 바란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 맞지 않는 예가 나타났다.
콩 심은 데 팥이 났다.
보통 새로운 현상을 관찰했을 때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제대로 본 거 맞아?’와 ‘진짜라면 어떻게?’ 이다.
1) 제대로 본 거 맞아?
관찰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더 플랜’이 관찰한 것은 ‘개표 시간 역전 현상, 역누적, 미분류표의 3%이상 발생, 분류표와 미분류표의 득표율 차이 k=1.5' 등이다.
‘더 플랜’이 토대로 한 자료는 선거관리위원회가 만든 자료다. 선거 개표 방송도 참고했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와 개표 방송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더 플랜’의 관찰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2) 진짜라면 어떻게?
이 질문은 ‘제대로 본 거 맞아?’를 포함한 질문이다. 진짜-‘제대로 본 거’ 면 어떻게? 관찰된 현상을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하는 과정이다.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를 기존의 과학 이론의 틀로 설명하자면 ‘지구의 자전 방향이 반대가 되었다’ 이다. ‘지구가 거꾸로 돌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관측과 실험을 통해 지구의 자전 방향이 거꾸로 되었는지 확인한다. 거꾸로 도는 것이 맞으면 기존의 이론의 틀로 설명이 된 것이다. 이제 조건의 변화가 없다면 해는 서쪽에서 뜬다.
관측과 실험 결과, 지구의 자전 방향이 바뀌지 않았다면 다른 조건이 필요하거나 기존의 과학 이론 틀이 아닌 새로운 이론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러한 논증과 설명의 과정이 과학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고 노벨상의 역사이기도 하다.
3) 논란
‘더 플랜’이 ‘콩 심은 데 팥이 나온 사실’을 설명하는 데 ‘자동 표 분류기의 오류 가능성’을 제시했다. 여기서 오류는 ‘기계 자체의 오류’와 ‘인위적인 개입-해킹이나 조작’을 포함한 개념이다. 영화에서 제기한 의문에 대해 일부의 사람들은 ‘노인의 기표 오류’를 주장하기도 한다. 미분류표의 득표율의 차이를 노인들의 실수로 인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팥에 대한 설명이고 어떻게 콩이 팔이 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기표 실수로 미분류표의 득표율의 차이가 팥이 되었다면 분류표의 득표 비율도 팥이 되어야 한다. 팥 심은 데 팥이 나와야 한다. 실제 결과는 콩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논란과 그에 따른 반론이 있을 수 있다.
K=1.5을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지,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통계나 과학 이론’을 이끌어 낼 지, 아니면 ‘개표 오류의 발견’으로 이어질 지 지켜볼 일이다.
4) 과학자들의 보수성과 언론
과학자들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이론이나 관찰 결과를 주장할 때 조심스럽게 접근한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사실이나 이론을 주장할 때는 기존의 사실이나 이론에 대해 될 수 있는 한 많이 찾아 보고 검토해 본다. 또 결과로 뒷받침 할 수 없는 주장은 잘 하지 않는다. 설사 과학자 개인의 오류로 인해 잘못된 주장을 하게 되더라도 검증의 단계가 하나 더 있다. '동료 심사 peer-review'의 과정이다. 관련 학계의 전문가들이 논문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다시 한 번 그들의 시각에서 판단해 보는 단계다. ‘더 플랜’에 나온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거쳤다. 생산적인 논쟁이 되려면 적어도 ‘더 플랜’에 나온 과학자들 정도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과학과 언론은 대상과 방법에서 다른 점이 많다. 그렇지만 사실을 추적하고 그들이 납득할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시민들과 과학자들은 질문을 던졌다.
3. 사람과 기계-철학적 함의
‘더 플랜’을 보고 나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영화의 주장에 동의여부를 떠나서, 어쩌면 ‘더 플랜’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결정하고 누가 따르느냐’
사기업의 경영적 판단에서부터 한 나라의 선거 결과에 중요한 표의 분류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은 다양하고 중요성도 다를 수 있다. 누가 판단하고 누가 그 결정에 따르느냐는 곧 ‘권력 관계’로 나타난다. 현재의 사회 구조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최종적으로는 ‘누가 결정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장이 결정하느냐 사원이 결정하느냐, 시민들이 결정하느냐 일부 정치인이 결정하느냐, 사람이 결정하느냐 기계가 결정하느냐.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낯설고 모호한 용어를 많이 쓴다. 미래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지게 될 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기본적인 권력 관계-누가 판단하고 누가 그 결정을 따르느냐? 누가 과학 기술을 통제하느냐? -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미래의 기술을 미리 익히는 것보다 먼저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결정을 내리고 과학기술의 통제권을 가진 권력이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인공지능 기계이든.
4. 거대한 실험 The Big Experiment-공개와 책임
2017년 5월 9일은 거대한 실험 The Big Experiment이 실행되는 날이다. 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다. ‘더 플랜’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실제로 검증해 볼 수 있는 ‘현장 실험’이 실시되는 날이다. 별다른 개표 과정의 변화가 없다면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전제는 ‘투명한 공개’다. ‘더 플랜’의 제작진들은 18대 대통령 선거의 결과를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얻기 위해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는 공개되어서는 안 될 국가기밀이 아니다. 자료 처리를 위해 2년의 시간이 걸리는 데이터도 아니다. 일주일 정도면 모든 결과가 정리될 수 있는 자료다. 국가 기관의 주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선거 결과의 ‘투명한 공개’다. 거대한 실험 결과의 분석과 검증은 시민들과 과학자들의 몫이다.
과학과 언론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